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미시간 주립대생들이 노조원 집단 폭력행사, 1937년 동부 랜싱 전투

원제 The forgotten battle of East Lansing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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Key Point

노조 조직 활동을 둘러싼 집단 폭력 사건이 당시 여론과 권력층에 의해 미화되었으나, 궁극적으로는 노동자 승리로 끝났던 미국 노동운동사의 잘 알려지지 않은 분기점이다.

핵심 요약

  • 1937년 6월 7일 미시간주 랜싱의 자동차 노동자연합(UAW) 조직 활동이 경찰의 대량 체포로 이어졌고, UAW는 이에 항의해 약 15,000명의 노조원이 '랜싱 노동절'을 선언했다.
  • 노조 조직원들은 인근 동부 랜싱(East Lansing)의 상점과 식당 폐쇄를 강요하기 시작했으며, 당시 미시간 주립대(MSC) 학생들은 이를 자신들의 식사 장소 폐쇄 위협으로 간주했다.
  • MSC 학생들이 대량 결집하면서 노조원 차량을 밀어내고 최대 20명의 노조원을 레드시더강에 던졌으며, 목재 조각과 철재 막대로 무장한 양측 간 대규모 충돌이 발생했다.
  • 학생 한 명(해롤드 콘래드 주니어)만 머리를 맞아 병원에 입원했고 다른 학생들은 검은 멍 정도만 입었으며, 노조원들은 무력해진 후 랜싱으로 철수했다.
  • 주지사 프랭크 머피는 MSC 캠퍼스에서 전투를 관찰했으며, ROTC 기병이 전투 개입을 요청했을 때 "너무 야만적"이라며 승인을 거부했다.
  • MSC 대학 지도자들은 학생들의 '공산주의 저항'을 칭찬했고, 미시간 주 하원의원들과 언론도 학생들을 영웅으로 찬양했다.
  • 그러나 노조는 법적·경제적 더 큰 전투에서 승리했는데, 자본 도시 철거 회사는 그날 노조 계약에 서명했고 체포된 노조원들이 석방됐으며 모든 혐의가 취하됐다.
  • UAW 지도자 레스터 워시번은 임시 금지 명령을 위반한 것으로 250달러 벌금만 부과받았고, 이 사건은 역사에서 거의 잊혀졌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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